이별 씬

심보선


우리는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어

머리 위에선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어


겨울밤 네 집을 나설 때

내 손바닥에 닿았던 철문의 냉기가

갑자기 온몸을 감쌌지


그 뜨거운 여름날에

우리는 길 한복판에 얼어 있었어


신은 우리를 따로따로 발견했지

2월과 8월에

다른 배 속의 암흑과 소용돌이에서

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거슬러 천천히 하나가 되었지


사랑은 두 존재를 하나라 믿는 신의 착란이라고

사람을 떠나는 것은 사람의 첫번째 자유라고

나는 말하지 않았어


지나는 행인들은 우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지


하지만 무슨 상관이야

우리는 다만 말 없는 두 사람이었으니까


그들이 잠자리에 들 때

‘나는 오늘 거리에서 말없이 마주 선 남녀를 보았어.’

라고 문득 생각한다면 그건

우리가 타인의 꿈의 입구에서 재회했다는 뜻일까?


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할 때

너는 입을 열었어


오늘 밤 샤워할 때 나는 울겠죠

샤워할 때 우는 것의 좋은 점은......


너는 엉터리 비극 배우처럼 말했어

나는 그게 무척 싫었어


그때 어디 멀리서 기차의 경적 소리가 울렸지

나는 생각했어

아니야, 이건 착란이야

경적을 울리는 기차 따위가 이 도시에 어디 있겠어


아니야, 그 말의 뒤편에서

자부심도 역사도 없는 햇빛이 산산이 부서졌지

햇빛 외의 모든 것들도 산산이 부서졌지


하지만 무슨 상관이야

우리는 다만 말 없는 두 사람이었으니까


그래, 샤워할 땐 온갖 소리가 들리지

가까운 절규부터 머나먼 경적까지

우리는 다른 소리들을

흐르는 물속에서

각자의 배 속의 소용돌이와 암흑에서

발견하지 그리고

그것이 하나의 소리라고 믿는 거지


나는 잘 알고 있지


그때 우리는 헤어지는 것에 그토록 집중했기에

헤어지는 데 실패했던 거지


그때 우리는 너무나 무서웠던 거지